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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쟁이 시어머니 [28]

며칠 전이 어버이날이었죠.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어요. 저희 부부가 시간을 낼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이미 말씀을 드렸고 요양병원에 지난 달에 찾아가 섭섭치 않게 현금과 선물(말씀하셔서 준비한 것) 드리고 식사대접하고 왔어요. 그래도 당일날 전화 한통은 드려야지 싶어서 전화했더니....

저에게는 별말씀 없으시고 언짢은 기색만 하시길래 인사 드리고 마무리했거든요. 남편에게는 울고불고 하시더군요. 그 시간이 잠깜 짬을 낸 거라 진정시키느라 애썼나봅니다. 이유는 세째딸이 왔는데 자기 아들을 미국으로 어학연수겸 보냈다는 걸 알게 되신 거예요. 아이들끼리 소식을 주고 받아서 저희 아이들 통해 알고 있었는데 아마 어머니는 이번에야 알게 되셨나봐요. 그 돈이 욕심나서 우시는 거예요. 그게 다 얼마냐. 그게 다 얼마냐고. 울면서 소리치시는 요점이 그거예요. 엄마게다는 한 푼이 아까운 년이 지 새끼라고 거기가 어디라고 그 큰 돈 들여서 보내냐고.

세째 시누가 젤로 착하거든요. 다른 딸들은 엄마한테 할 말 다 하면서 차단할 것 하고 할 수 있을만큼만 하고 살아요. 만만한 게 세째 딸이라 새 신발만 신고 나타나도 돈이 어디서 나서 신발을 새로 사 신었냐고 구박합니다. 작년엔가 어버이날에 떡을 해오라고 시켜서 알겠다 했더니 방아간에 가서 영양찰떡하고 흑임자 인절미하고 한 말씩 해오라고 했어요. 시어머니 당뇨로 식이요법 하시는데 찰떡 드시면 안되는데 그 많은 양을 뭐하러 그러냐 했더니... 병원에 돌리고 싶어서 그렇다고 하셨대요. 세째 시누이가 엄마 드실 것은 몰라도 나 그런 큰 돈 없어 했었는데... 그 얘기를 지금도 꺼내시면서.... 에효.

남편 어려서 아버지 돌아가시고 남매가 돌아가면서 일해서 살아왔어요. 어머니 경제활동 단 한번도 안하시고. 그래도 재가 안하고 애들 건사했다는 것을 가장 큰 벼슬로 알고 계시고 본인은 시골 큰 부자집 딸로 태어나 경제활동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큰 자랑이신 분.

저 결혼하면서 모진 소리 다하셨는데 그 때는 어려서 잘해야만 하는 줄 알고 모지리처럼 다 참았는데... 저도 20여년 훌쩍 지나고 보니 적당히 무시하고 적당히 거리 두면서 지내고 있어요. 처음 10년을 누가봐도 뭐라할 수 없게 잘했거든요. 친정엄마 아빠 가슴에 대못박으면서. 나 하나 참으면 언젠가 햇빛이 쨍하게 비출 날 올거라고 생각하면서. ㅋ

햇빛 비추기 전에 제가 병들고 변하더라구요. 어느 순간 냉랭하게 변했어요. 사연이야 구구절절이 많지만 저도 살아야겠다 싶어서 말대답도 하고 거절도 했더니 울 시어머니 제가 폭행이라도 행사한 것 마냥 충격받아 드러누워 생쑈를 하시더니 받아줄 사람 아무도 없다는 거 아시고는 혼자 털고 일어나셨어요. 근 보름만에.

뭘 해드려도 불만이고, 무슨 의논을 해도 역정이예요. 처음에 잘하려고 비위맞추고 눈치보던 어린 제 모습이 바보같고 한심하고 안쓰럽고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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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욕심쟁이 시어머니 종이인형 0 65055 1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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