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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2주년이 다가옵니다. 행복해서 눈물납니다 [207]

결정적으로 이혼을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얘길 하기 시작한 계기가 있어요.

엄마 돌아가신 후 2년 가까이 지날 때까지 전시댁과 별 문제 없이 지내고 있었어요. 얼굴 붉히는 일 없이요. 그러다 작은 일로 어린 시누이에게서 공격적이면서 자기 엄마만 두둔하는 술주정을 들었고, 이에 따지자 조용히 관람하듯 침묵으로 보고있던 전남편이 갑자기 제게 조용히 해. 라고 소릴 질러서 일이 커졌어요. 술은 같이 마신 게 아니고 술자리 좋아하는 시누이가 새벽에 들어온 거였어요. 남편이 자기 동생만 그렇게 두둔할 지 몰랐어요. 저만 몰고 가더군요. 친정부모 다 돌아가시고, 친정 언니오빠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살고 하니 내가 고아같이 우스워 보였던 건지, 시댁식구들은 모조리 그 도시에 모여살다보니 내가 만만했을 거예요. 그러다 4개월이 흐르고 저는 몇 달이나 남은 추석에 안가겠다고 했어요. 엄마 제사 참석하러 서울 오빠네 가고 싶었어요. 그 전해에는 엄마 1주기때도 시댁 차례상 차리느라 못갔죠. 얼굴도 모르는 귀신들 제사 모시러 나 낳고 홀로 키워준 엄마를 외면하는 게 답답했어요. 남편이 얼마나 잘났길래, 내가 이 집에서 이러고 엄마 첫 기일에 이렇게 남의 음식을 만들며 웃는척을 해야는지, 맘 가는 대로 안가고싶었어요. 아무도 사부인의 기일에 대해 말하지 않고 불편한 진실인듯 외면하는 그 집에서요. 집구석이라고 하고 싶네요. 근본없고 배운 거 없는 교양없는 사람들.

추석에 안가겠단 그말을 했더니 발끈하면서 안된다 하대요. 애아빠가요.

그러면서 제게 하는 말이 ' 니는 왜 우리엄마한테 용돈 안보내냐?'였어요. 그동안 저보다 소득이 백여만원 적고 결혼을 너무 기울게 해서 전남편은 한번도 자기집에 돈을 보내게 한적이 없어요. 보내려고 해도 펄쩍 뛰며 말렸던 사람인데 속마음을 알게되니 좀 많이 놀랐어요. 저는 화가 나서 ' 날 낳았냐, 날 키웠냐. 우리엄마 장례식에 오기를 했냐. 나 직원들하고 회사에서 커피 시켜먹느라 내고 있는 월회비 7만원도 손 떨린다. 주문해 먹는 커피라 비싸서 아까워도 직장에서 모나기 싫어 내는데, 내가 10만원을 드리겠냐. 적어도 30은 드려야 하는데, 받은 것도 없고, 아까워서 나 못보낸다.'했더니 애 아빠가 아픈곳을 찌르대요. '넌 니엄마에게 얼마나 잘했길래?'라고요. 그때 그순간에 결심했어요. '이혼하자. 나 놔달라. 돌아가신 장모님에게 한번도 살가운 사위가 아니고 꿔다놓은 보릿자루같이 장모님이라고 부른적도 없으면서 돌아가신 후에 장모님을 '니 엄마' 라고 부르는 너와는 살 수가 없다. 나 놓아달라.'라고요. 그 후 한달 후에 법원 가 접수하고 석달 후에 이혼이 됐어요. 시모가 싫었으나 결정적인 건 애아빠의 언행이었어요. 속마음을 알고나니 안그래도 싫은 사람 억지로 살 수 없겠어서 헤어졌습니다. 이 글 올리고 나니 더 명확히 알 것 같아요. 역시 저보다는 다른 분들의 의견을 고루 듣는게 사는 데 도움이 크게 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 이혼 후에도 이렇게 지내면 사실혼 관계가 된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혼 할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애 아빠에게 면접교섭권만 주고 저도 이 애매한 관계를 끝내야겠어요.

그리고 저더러 장례식 직후에 돈 못버는 병신몸이 되면 어서 죽어야 한다고 말하던 시모란 여자에게 돈까지 보내는 효부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 죽으면 춤추며 웃고 좋아할 여자에게 돈을 보내기 싫었어요. 정말로. 그리고 이혼을 결심한 이유가 된 시모의 실언이 또하나 있어요. 지금은 그 여자의 실수가 제 인생을 구한 거나 다름없어서 고맙지만요.


전화대화 끝에 비아냥 거리면서 '너나 나나 결혼 잘 못했지.' 였어요. 자기도 제가 이러고 사는 게 평범한 여자의 행복한 삶이 아닌 걸 잘 알고 있었던 거라고 느꼈어요. 내가 저여자 보기에도 그렇게 불행하게 사는 건가라는 깨달음이 왔던 것 같아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라고요. 니가 결혼하고 애까지 있는데 이제와서 어쩔거냐 라고 들리던데요. 니까짓게 이제와 어쩔거냐 라고. 결혼 잘 못했지만 이제와 너같은 게 뭘 어쩌겠느냐 라고. 그래서 몰래 이혼해버리고 싶었어요. 이 여자 모르게 자기 아들 버림받게 하고 몇년 간이라도 모르게하고 나중에 뒤통수 치듯이 미친듯 발악할 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내 아들은 빈몸뚱아리로 쫓겨나니 이혼은 안된다 했었어요. 백일직후 이혼하려고 했을때요. 이제와 생각하니 빈몸으로 왔으니 빈몸으로 나가는게 맞는데요. 5년을 부부로 살면서 월급통장을 준 적도,. 월급이 제 통장으로 온 적도 없고, 얼마를 받는지도 몰랐고 늘 80 - 120사이로 보내줬으니 기여도도 낮아요.

자기 딸이라면 자기 아들같은 남자에겐 결혼 안시켰겠지요.

이런 시모의 말들을 2년간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남편이 자기 엄마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는 그 말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여자에게 돈을 왜 보내야 하나요. 용돈으로 끝나지 않고 부양에서 장례식과 화장이나 매장하는 일까지 해야 끝이나죠. 죽어서 묻혀야 끝이나죠. 그 도리란 것요. 그걸 해줄 수 없어서요. 애아빠도 너무나 싫었고요. 사이가 좋은 적이 몇 번 안되고 백일 이후로는 남남으로 지냈어요. 그만하면 많이 갈등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하면 이혼 고민 4년이나 많이 해왔다고. 시모 나이 2년 전에 60세였어요. 시부는 64세였어요. 그 여자 55세에 제가결혼한 거예요. 젊기도 젊은 시모였어요. 환갑여행 보내드린다고 일 년전부터 얘기 나왔는데 그 전에 이혼해서 후련해요. 상관없어지니 이렇게 행복할 지 몰랐는데 정말 홀가분해요. 깃털처럼 가벼워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요. 시댁하나 없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건지. 반대로 생각하면 그 시댁이란 것 때문에 얼마나 압력에 부담을 느끼고 일년일년을 버티고 산건지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헤어지면 소멸해버리는 시댁이란 것들.


사부인 장례식에 형식적으로라도 검은 옷 입고 와줬다면, 슬픔 전혀 없지만 그래도 와주기라도 해줬더라면, 도우미들 많지만 같이 음식 나르며 슬픔 함께 해줬더라면, 거기서라도 처음으로 안아줬더라면 돌아가신 친정부모님을 대신해서 잘해드리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받은 적이 없는데 그들 죽는 날까지 맏며느리 도리라는 걸 돈을 써가며 해야한다는게. 내 부모가 아니라 못할 것 같아 헤어졌습니다. 저는 막내입니다. 막내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막내라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시댁에서는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했습니다. 시모가 자기 동네 사람을 만나 한참을 수다떨고 자기 친구를 만나도 저를 소개시키지 않았습니다. 한번도요. 친정엄마는 꼬맹이때부터 자랑할 것 하나 없는 저를 자랑하기 바쁘셨는데 시부도 시모도 늘 저를 '야'라고 하대하고 이름한번 불러준 적이 없습니다. 맏며느리는 이런 대우 받아도 되는건지, 저도 맏며느리 도리 하려고 첫 몇년 간은 잘하려고 했어요. 보통의 며느리들 처럼요. 이젠 그마저도 안해도 되니 여기가 극락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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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부부관계 안한 지 6년도 넘었어요. 아이때문에 이혼 안한 듯 사는 건데. 저도 이 남자 싫을 때 많아서 오지 말라고 한 적도 많은데 아이가 아직 이혼 사실을 모르니 오게 하는 게 나을 듯 하여 한 달에 두세 번 오게 했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산 신탁 알아봐야겠어요.

전 남편과 손도 안잡습니다. 안만나고 면접교섭권만 주고 1년 넘게 지내봤는데 아이가 친조부모집에 가는 걸 싫어해서 안보내게 되니 애아빠가 제 집으로 와서 아이와 놀게 됐어요. 둘만 내보내면 애 아빠가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게 아니라 꼭 자기 본가로 데려갑니다. 애를 혼자 못봐서요.

집에는 더 들이지 않는 게 맞는 거죠. 앞으로 그렇게 할게요. 글 쓰고 조언 듣고 가니 감사드립니다. 재산은 혼자 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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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 형제가 8명인가 됩니다. 대부분 여자형제고 그 지역에 몰려서 사는데 제 엄마 장례식에 역시 아무도 안왔습니다. 알리지도 않았던건지, 알렸어도 갈필요 없어라고 했겠지요. 이혼 숙려기간중에 시모 바로 위 언니의 남편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이 분은 저 결혼 후 2년 반쯤 흐른 설에, 그때 아이가 한살 반쯤 됐을 때인데, 지나가는 말로 거실에서 큰 소리로 "어릴때 아빠 없는 집에서 자란 딸과는 결혼하는 법 아니다. 그런 집 엄마들은 꼭 티가 나게 애를 키운다. 그런 집은 엄마도 특이하고 딸도 특이하다. 그런 집 딸과는 결혼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시모, 남편, 시이모 다 곁에서 음식 나눠먹고 있었는데 다들 침묵했습니다. 저만 고개 못들고 불쾌한 티 안나게 아무렇지 않은 척했습니다. 그 집 아들이 저와 직업이 같아서 내부망으로 경조사가 메신저로 연락이 옵니다. 연락 왔을건데 그 사람도 안왔습니다. 그 사람 부인도 안왔습니다. 다 같은 직업입니다.

그 말 한지 2년 못되서 알콜성 간암으로 죽었다고 들었는데 숙려기간이라 안가도 되니 안갔습니다. 애아빠도 나중에 말해줬는데 편했습니다. 뭔가.. 가기싫은 곳에 안가니 굉장히 자유로웠습니다. 니들도 아무도 안왔으니 나도 안간다.. 이렇게요.

이혼 후 문제 일으켰던 시누이 결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젠 상관없으니 안갑니다. 정말 편합니다. 이렇게 적어서 너무 죄송한데 정말로 좋습니다.

시동생 동서 부부 출산도 있었고 시누이 아이 백일도, 시동생 아이 돌잔치도 있을건데 애아빠가 그래도 이혼했다고 알리지 않아주니 세상 편해요. 알리는 게 이상하지요. 이럴수가. 싶을 정도입니다. 행복합니다. 제가 얼마나 가치없는 존재였는지도 알겠고, 그 사람들 갑질도 알 것 같습니다. 며느리는 죄인이 아닌데 괜한 죄인취급하며 무조건 돈을 벌어와야 하는 경제적 동물 취급당했는데

이혼하고 사람답게 자유롭게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


엄마 장례식 1년 후에 시동생 결혼식이 있었는데 100만원 드리고 세탁기 하나 사드렸습니다. 그땐 바보같지만 주고 싶어서 제가 달에 30만원씩적금 든 거 5개월 됐을 때 그것 깨서 줬습니다. 시동생이나 시누이는 저 결혼 때 둘이 돈 모아서 후드티 한 벌 커플티로 해줬습니다. 그 때 그들 둘 다 30대였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큰 오빠 결혼에는 10만원 현금도 축의금 안주면서 손아래 시동생들 결혼하면 맏아들은 능력없어 못줘도 맏며느리는 현금 100만원, 200만원씩 한다고 그게 시댁에 대한 도리라고 하더군요.


이런 짓 이제 안해도 됩니다. 받은 것 없어도 주고 싶어 줬는데, 이젠 종이쪽지 하나도 주고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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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한 지 두 달 후면 2년째가 돼요. 애 낳고 두 달 후부터 결혼 뭔가 잘못됐다라고 느꼈고 이혼생각 처음 했었는데 길게 끌다가 4년을 허송세월하고 결국 이혼했어요. 아이가 있으니 숙려기간때문에 8월에 최종협의 판결문이 나왔지요. 너무나 행복해서 집에서 머리하고, 썬글라스 끼고 무채색 무릎길이 원피스 입고 신이나서 구청가서 신고했어요. 애 아빠는 몇 분 늦게 오더니 눈물을 찔끔거렸고요. 그 후 몇달간 우울해 하면서 공격적으로 변했다가 제가 다시 이혼 전처럼 놀러오게 해주니 신나있어요. 부부관계는 이혼 전부터 수 년간 안했어요. 지금도요. 너무 당연하지만. 이것도 참 편하더군요. 이런 인간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 아무 부담이 없다. 나는 이혼했으니까요.


그러게,, 시댁편보다 내편을 들어주지 그랬어. 왜 니 엄마편만 들고 나를 니 엄마 앞에서 4개월된 애 안고 무릎까지 꿇게 만들었니.

제 엄마는 4년전에 돌아가셨는데 시댁 누구도 장례식에 안왔다는 그 얘기 올렸던 여자예요. 추석 이틀 전에 돌아가셨고 서울에서 돌아가셔서 서울서 장례식 했더니 추석 제사모신다고 안왔다는 그 시댁요. 시누이, 시동생, 시아버지, 시어머니 다 안왔어요. 추석이 껴서 장례를 4일장을 했으니 올 만도 했는데 아무도 안왔어요. 애 아빠는 착했어요. 지금도 착한 편이고요. 선한 사람인데 줏대없이 굴어서 이혼하게 됐어요.


결혼 직후 부터 7년간 주말부부였어요.

장남인데 결혼은 고아처럼 왔어요. 제가 사서 살고있던 아파트에 주말에 몸만 왔어요. 이 얘긴 치사해지니 안해도 되고..


정말 행복해요. 시모가 참 인성이 안좋은 여자였어요. 막말했지요. 장례식 후에 다시 출근한 첫날 장례기간 동안 맡긴 아이 데리러 갔더니 제게 첫마디가 '하이고, 너는 병 걸리려면 일찍 죽는 큰 병 걸려야지, 병원서 길게 있는 병 걸리지 마라. 누가 니 병수발 하겠냐? 내 아들이 하겠냐? 니 아들이 하겠냐?, 교통사고 나도 크게 나서 죽는 게 낫지, 질질 끌면 그거 좋을 거 없다. ' 잊혀지질 않아요.그땐 몰랐어요. 경황이 없는데 아직도 멍해있는데 아빠도 저 유아기에 돌아가셔서 기억도 없는데 이젠 엄마까지 돌아가시니 더 우습게 보였나봐요. 엄마얘기, 장례식 얘기는 하나도 안했어요. 묻지를 않더군요. 전혀 하나도. 수고했다, 애썼다. 사부인 좋은데 가실거다. 이런 말도 없었어요. 마치 엄마가 돌아가신 걸 모르는 여자처럼. 그렇게 외면을 하더군요. 그게 될까.. 일반상식가진 사람이라면 저러는 게 될까. 아무리 며느리에게라지만. 결혼 한지 3년도 안된 며느리에게.

여자네가 더 잘 살고, 비교도 안되게 형제자매들이 다 좋은대학 가서 5급, 3급 공무원인데도 며느리는 그냥 종년이라고 5년간. 느끼며 살았어요. 많이 배웠든 못배웠든. 일단 기본적으로 며느리 무시부터 하고 기선잡으려했던것 같아요.

우리 엄마 갑자기 돌아가셔서 딱 28일만 요양원에 계시고 이박 삼일만 병원에서 ct찍으셨는데. 그게 다여서 병수발도 못해드린 한이 남았는데, 저 들으라고 저런 말을 하다니. 이것 말고도 많은데 구차해서 안적고 싶어요.

그땐 몰랐어요. 순진하고 멍청하고 너무 어리석었어요. 세상 물정 모르는 그냥 뭣모르는 일반 직장인이예요. 저는 이혼 후 정말 행복합니다. 재산분할 백원도 안받았고, 위자료도 백원도 안받았어요. 그저 너희 집 사람들과 안보고만 살고싶다. 그러니 이혼해달라고 했어요. 시댁에 더이상 안가고 안만나고 싶다.. 돌아가신 내 엄마를 모욕하는 너와는 더이상 살 수없다. 너희 집은 왜 우리엄마 장례식에 안왔니라는 말을 했던 게 가장 심하게 싸운 말이었습니다. 이혼도 조용히 잘 했어요.


주말마다 어리고 착하디 착한 제 아들과 놀러다니고, 아파트도 한 채 더 샀고, 상가도 한 개 샀어요. 시댁은 흙수저죠. 저도 그에 못지 않았어요. 지금 애 아빠는 양육비로 월 50줄때도 있고, 원래는 50에 합의서를 썼는데 80줄 때도 있어요. 애아빠와는 1년 넘게 이혼부부답게 살다가 작년부터는 제 집에와서 이혼 안한 듯 살고 있습니다. 주말부부인 건 변함없고요. 남들은 몰라요. 애 아빠는 그리 나쁜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장모 무시하고, 여자 좀 무시하고, 장남이니 자기집을 보호하고 자기 엄마밖에 모르는 평범한 남자였어요. 그래서 이혼당했겠지요.

재혼생각은 없어요. 원래 남자없이도 잘 사는 성격인데 우연히 결혼을 해봤다. 이런 생각으로 살아요. 남자에 질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시댁이 또 생기는 게 싫으네요. 정말. 끔찍해요. 지금도 악몽을 꿔요. 그래도 행복해요. 꿈일 뿐이라서요. 더이상 현실속에는 시모도, 시부도 동서도, 시누이도 없어요. 제사도, 명절도요. 부양도요. 이게 제일 좋아요. 자랑글 올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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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이혼 2주년이 다가옵니다. 행복해서 눈물납... 종소리소리 0 180352 17.06.18
답글 힘내세요!!^^ 피클 0 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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