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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179]

고맙습니다! 한분 한분 꼼꼼히 읽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많은분들의 과찬의 말씀과 응원과 당부의 말들 살면서 잊지 않겠습니다 너무 가슴 벅찰만큼 고맙습니다 그리 훌륭한 엄마도 아닌데 ㅠ

감기도 저멀리 달아난듯 힘이나네요 !!

제꿈은 집시맨 출연하는 사람처럼 캠핑카로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그림도 그리고 맛난것도 먹고 자유롭게 살고싶네요,.애들 경제적으로 독립 하면 바닷가 작은섬에 작은집에 고동잡고 조개줍고 그림그리고 내가하고싶은대로 살아갈 꿈도 꾸어봅니다 아들들이 힘들거나 지칠때 언제든 와서 마음놓고 쉴수있는 둥지가 되고싶네요 아직 남은 긴인생 평온하길 바라고 좋은말씀들 가슴에 새기고 우리 건강하게 살아요




요며칠 감기몸살로 마니 아팠다 아프니까 시간도 날짜도 요일도 모든게 멈춰버린듯 그저 누워만 있었다 아무일도 못하고 살아도 산게 아닌것처럼 고작 콧물감기 몸살에 그렇게 일상이 멈추었다

그리고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나온 내삶이..

10대 엄마가 날 미워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난 계모인가 생각했었다 무시하고 욕하고 아예 학교에 필요한 돈을 주지 안았다 왜그랬을까? 중2때 공납금을 못내 수업중 쫓겨났다 너무 창피하고 슬펐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도 그냥 방치 얼굴이 벌겋게 변해버렸다 친구들은 화상 입은줄 안다 난 열등하고 못생긴 작은 벌레같다고 생각했다 ㅠ 고등학교때 친구들 사이 왕따를 당했다 어떤애가 내가 도둑이라고몰았다 그때 아버지가준 3천원이 있었는데 돈없는애가 어디서 돈이 생겼냐고 친하던친구들 사이에서 도둑이라고 난 맹세코 남의것 훔쳐본적이 없다 지금에 생각하면 아이비 미원이라 불리던 그애가 도둑이었던거 같다 도둑이 지발 저린거니까 억울했지만 난 떴떴했다

20대 가장 빛났고 가장 아팠던 나의 이십대 찬란한 봄처럼 사랑이 왔다 장미꽃이 만발하던 5월 속으로만 짝사랑했던 그사람이 내게로.. 하루도 안보면 못살것처럼 날마다만나고 차마시고 얘기하고 보고있어도 보고싶다고 말해주었던 그사람 그사람의 말한마디 행동하나 미소 목소리 너무도 그립다 그렇지만 그해 12월 오토바이 사고로 거짓말 같이 어느날 갑자기 그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이세상에서 나에게서 그날이후 난 제정신으로 살수가 없었다 그비통함 그상실감 그절망감을 어떻게 가슴 저깊은곳의 아픔을 그때 내 나이 겨우 25살 그사람 26 살 이었다

그러다 그사람의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소주세병 먹고 완전 죽은상태에서 깨어보니 상황끝이었다 그리고 임신 임신2개월 내인생 첫임신 차마 지울수 없었다 그렇게 28살에 첫아이를 낳고 그친구와 결혼을 했다 결코 행복할수 없었다 원해서 한일이 아니었기에 그친구도 나도 그친구는 밖으로만 돌았고 다른 유부녀랑 살림도 차리고 생활비도 안주고 때리기까지했다 도박으로 온집안에 빨간딱지가 붙어지고 그친구는 마마보이 였다

37살 난 양육비 위자료 하나도 없이 받을수있는돈도 없었다 친권 양육권 모두 내가 가지고 초1 초3 아들둘 데리고 이혼을 했다 조금의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이제부터 열씨미 살아야지 모든건 내선택이었다 처음엔 살집도 없어서 여동생집에 일년을 살았다 겨우 돈을 모아 아이들과 집을 얻을수 있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일주일치를 애들이 맛있는데 너무 많이 한다고 그땐 장사한다고 어쩔수가 없었다 자기들이 있는반찬 챙겨먹고 집청소 해놓고 엄마 힘들 까봐 참으로 기특했다 하루에 투잡 하면서 애들 돌볼새없이 돈을 모으려 노력했고 그땐 친구도 친정집도 모두 연락을 끊었다 그럴시간도 여유도 없었기에

40대 아들이 공부를 잘했다 고맙게도 바쁘다고 학교도 졸업식 참석 밖에 해준게 없는데 바르게 잘 크고 있었다 엄마가 젤 싫은게 문신하고 오토바이 라고 그두개는 절대 하지말라고 그말을 지켜주었고 대신에 난 집에 돈받으러 오는 사람 없게 하겠다고 그약속을 지켰다 난 남에게 빌리는 것도 빌려주는것도 안했다 한달에 한번 아이들과 영화를 보고 서점에 들러 읽고싶은 책을 사는 작은 사치를 즐겼다 참 힘들었지만 건강했기에 아이들크는 모습에 내삶의 이유였고 행복도 했다

50대 큰애는 서울에 전액 장학금 받으며 대학 다니고 있다 군대도 행정병 으로 전역하고 복학해서 회계사시험 2과목 남았고 작은애도 대학1학년 마치고 군대 전역후 돈 번다고 자퇴하고 사업중 이다 지금은 작은애는 경제적인 독립 까지 한 상태고 큰애도 올해 회계사 시험 합격 하면 경제적 독립 가능하다 생각한다 큰애 시험 치고 나면 애둘 에게 말할 생각이다 아빠에대해 눈으로 본게 있어 어렸을때 상처 였겠지만 될수 있음 말 안하고 싶었다 애들 클때 한달에 한번이라도 만나달라했는데 모른척 하더니 애들 다키운 지금 명절 친척 결혼식에 애들 찾는다 속으로 화가난다 뭘해줬다고 친권 양육권 다포기한 사람들이 울아들들 한테 빨대 꽂을까 두렵다 평생을 지엄마한테 빨대 꽂았던 그인간도 울애들한데 그럴까봐 맘속으로 다짐한다 큰애 시험 끝나면 엄마 마음속 얘기들 꼭 할거라고 엄마의 지나온 인생 한이 아니고 아들의 인생 을 위해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은 아들의 인생을 위해서 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나이 54살
하루도 안힘든 날 이 없었지만 아이들이 있었기에 죽음 보다 남자보다 아이들을 선택 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생각한다 고맙다 아들들 이제 너의 삶을 살길 바랄께 찬란하게 빛나는 삶을 살기를 니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수 있기를 엄마는 지금 행복해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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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글쓴이 공감 조회 날짜
선택 돌이켜보면.. T업c맑음 0 108623 18.01.26
답글 칭찬하고싶네요. 찌누 0 12 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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