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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주는 황홀한 선물 [49]

  아직 해도 일어나지 않은 새까만 아침,
  부스스한 몰골로 머리는 잔뜩 헝클어진 채 모닝 커피 한 잔 타서 배란다로 나갔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한가치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수룩수룩 식도를 핥는 커피 지나가는 소리, 끄윽끄윽 위장을 갉아대는 담배연기 내려가는 소리, 꽉 쥐어 짠 스펀지를 물속에 갖다대듯 숨을 크게 내 쉰 후 바람빠진 폐속에 담배연기를 가득 담았다. 담배연기는 폐속을 가득 채우며 나에게 몽롱한 아침을 던져주었다.
  아침 빈 속에 태우는 첫 담배 만큼 맛있고 황홀한 것은 없다. '나에게 니코틴을 공급해 줘' 라는 뇌와 피의 요구를 들어주는 그 맛은 이 세상 어떤 맛과도 비교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잔의 커피와 한 가치의 담배는 나에게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시계였다.
  "여보, 담배 좀 끊어. 애들 생각해서 담배 좀 끊어."
  언제 왔는지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결혼하고부터 시작된 담배끊으라는 소리, 몇년간 잠잠하더니 며칠 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어제 오늘 피우는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다시 시작한 것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며칠 전에 고모부님 장례식이 있었다. 당뇨였다. 고모부님은 병원에 있으면서도 손과 발의 수술 그리고 심장수술 등 몇차례의 수술을 하셨지만 결국 돌아가셨다. 당뇨의 가장 큰 적은 담배였는데 후회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으셨다. 그 때문이 아니어도 모든 병의 근원이 담배라고 굳게 믿고 있는 아내였다. 누군 모르나. 알고 있지만 못 끊는 걸 어찌하나. 사실 결혼 후 꼭 끊겠다는 금연약속 때문에 한번 시도해 본 적은 있으나 작심삼일만에 실패한 씁쓸한 기억이 있었다.
  "아빠, 담배 끊어."
  엄마한테 세뇌당한 큰 녀석 겸이가 엄마하고 합세해서 공격했다. 쩝! 나는 명분없는 큰 목소리로 맥아리 없는 저항을 해보았다.
  "알았어. 이 놈아."

  "여보야 나 담배끊으면 뭐해줄거야."
  나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두 아들 녀석들에게 단호하게 담배끊는 멋있는 아빠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 헤어지기 섭섭하지만 오늘부로 이십년지기 전우인 담배를 끊어야겠다.
  "아, 그냥 끊어. 끊으면 냄새도 안나고 좋잖아."
  이건 뭥미, 담배끊는게 쉬운가. 그런데 아내는 요구사항만 있을 뿐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다. 나는 나의 금연에 아내의 동참과 도움을 요구했다. 나는 마약보다 끊기 힘들다는 담배를 끊으려는데 아내는 입으로 때우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그냥 끊으면 뭔가 밋밋하고 억울할 거 같았다. 뭔가 보상이 있어야 담배끊는 맛도 있을 텐데.
  "내가 일주일 금연 성공하면 찐하게 서비스(?)해줘바. 그게 내가 원하는 선물이야."
  "알써알써, 말만 하지말고 꼭 끊어봐. 그보다 더한 것도 해줄라니까."

  '단칼에 끊어야 돼' 내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만 들었다. '한가치만 피우면 소원이 없을 텐데' 꽁초 하나만 주어 피우고 싶었다. 옆 가게 사장님한테 가서 한가치만 달라고 할까. 그렇게 담배는 날마다 나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있었다.
금연 일주일째,
  도끼로 장작을 팼다. 그 때는 부동산을 했던 때라 나무난로를 땠었다. 그래서 뒷마당에는 언제나 장작이 있었다. 때문에 나무꾼처럼 오직 장작만 팼다. 하루종일 장작만 팼다. 겨울동안 날 장작을 일주일 사이에 다 팬 듯 했다. 또 퇴근해서 집에 오면 런닝머신에서 뛰었다. 두번이고 세번이고 담배생각나면 무조건 뛰었다.
  그 수밖에 없었다. 머리속에서는 오직 담배와의 싸움만이 있었다. 정말 옆에 담배피는 누군가가 한가치의 유혹만 한다면 바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코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딱딱하게 굳은 누런 덩어리가 나왔고 입에서는 구내염이 생겼다. 과한 운동으로 인한 수분부족, 그리고 피가 요구하는 니코틴 부족, 그런 것들로 인해서 입속이 헐기 시작했다. 혀에서는 혓바늘이 일고 입천장이 홀라당 몽땅 벗겨졌다. 아구창도 진행되었다.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입안이 쩍쩍 갈라졌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금단증상이라 했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물만 먹었다.

  "여보야 나 금연 일주일 성공했으니 상받어야 돼. 그러니 목욕재계하고 지달리고 있어. 겸이도 빨랑 재우고."
  나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면서 런닝머신으로 올라갔다. 일주일 금연약속을 지켜냈다는 나의 결단력을 스스로 대견해 했고 또한 전리품(?)으로 아내가 주는 황홀한 선물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런닝머신만 끝나면 오늘은 아주 기쁜 날이 된다. 일주일 금연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켜내고 아내가 주는 선물을 받는 날이다. 요조숙녀처럼 정숙하기만 한 아내가 섹시한 요정으로 탈바꿈할 날이다. 이 얼마나 기대되는 밤인가.

<덧글>
  그렇게 금연에 성공한 지 7년이 다 되어갑니다. 아직도 일주일 금연에 성공했던 그 밤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하늘에서 밤새도록 흰 눈이 소복소복 내리던, 너무나 아름답고 눈부시던 겨울밤이.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꼭 금연에 성공하시길.

<http://blog.daum.net/kimhb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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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아내가 주는 황홀한 선물 호랑나비 0 106332 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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