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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목소리

MOTHER

이 시대에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Raising A Feminist Son 이경은 전 <엘르> 피처 에디터

한국에서 태어난 남자. 한남. 요즘 뜻도 모르고 썼다가는 큰일 나는 그 호칭에 생물학적·지리학적으로 가까운 존재가 바로 내 아들이다. 어느 가정의 아내 또는 며느리의 역할에 대해 상상과 현실 사이 요단강 같은 게 있다는 걸 자각하지 않는 여자가 있을까. 엄마라는 지위의 슬픈 숙제는 다음 세대의 아내나 며느리들의 삶은 나와 같지 않아야 한다는 데서 시작한다. 겪어온 차별이라는 것의 실체를 마주하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가서 ‘세상일이 다 그런 거지 뭐, 히히호호’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들이 6세임에도 남녀 차별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정색하게 된 이유다. 아들이 여자라는 사람을 대할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형태의 차별을 저지르거나 어떤 우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내 생전에 보기라도 한다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기 때문에.

하지만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은 의외로 더 가까운 시일에, 온 사방에 널리고 널려 있었다. 대부분의 아동용 콘텐츠는 남자라면 응당 씩씩하고 용감한 것을 지향하고, 여자라면 예쁘고 분칠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핑크퐁’ 동요 속 아빠는 힘이 세고 엄마는 어여쁜 것처럼. 아빠 역할자는 늘 수트를 연상케 하는 복장, 엄마 역할자는 액세서리가 전부인 복장도 문제다. <꼬마버스 타요> <로보카 폴리> 역시 남자 캐릭터가 다수에 여자 캐릭터는 장식인 양 한 명씩 끼여 있다. 뽀로로 마을에서도 여섯 명의 남자친구들 틈에서 여자로 지정된 캐릭터 루피는 모두를 위해 요리를 해주는(심지어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설정 외엔 비중이 없다. 디즈니 채널의 <미키마우스와 친구들> 역시 미키, 도널드, 구피는 각각 개성과 성격이 다르지만 미니와 데이지는 집안일을 하고 리본을 모으고 서로 예쁘다고 칭찬할 뿐 두 명의 독립된 인격으로서의 성격 묘사 자체가 없다. 모든 프로그램을 끊었다. 여자 정비사, 사진가, 해양학자 등이 남자 캐릭터와 비교적 동등하게 등장하는 <바다 탐험대 옥토넛>과 (의도가 너무 뻔하긴 하지만) 똑똑한 흑인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꼬마의사 맥스터핀스>만이 시청 가능한 애니메이션이다. 아들은 가끔 혼란스러워한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분명히 ‘남자 변기, 여자 변기’라고 말한 것을 엄마는 왜 따박따박 ‘서서 하는 변기, 앉아서 하는 변기’로 정정하는 건지. 울음이 나오려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멋있는 남자가, 남자답게 뚝 그치라”고 달래줄 때 엄마는 왜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것은 이제 없는 말”이라고 그 할머니들을 머쓱하게 하는지. 파란색이 아니라 핑크나 옐로를 권해 “여자애들 색이잖아”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런 경험을 주위에 말했을 때의 반응 때문에 입었던 내상들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네 아들 너무 피곤하겠다, 나중에 학교생활에 적응 못할 거다, 너무 유난이다, 사춘기 때 볼만하겠다…. 나는 보이지 않는 남녀 차이라는 편견과 싸우는 것 이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낯설어하기와 싸워야 한다. 그러나 내 아들이 세상을 더 평등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남자로 클 수 있다면야 페미니스트 엄마로서 나는 더한 일도 얼마든지 엄격하게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

Not Wanting To Be A Mother원영인 프리랜스 에디터

초등학생 아들을 둔 한 친구에게 물은 적 있다. “너는 어쩌다 엄마가 될 생각을 했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콧구멍으로 수박을 꺼내는 고통을 감내하고, 몇 년간 아이를 위해 일과 자신의 자유를 모두 내던졌으며, 언젠가는 그 자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며 성장할 한 엄마는 이토록 엄청난 결심을 ‘어쩌다 보니’ 했다고 한다.

하지만 30대 중반, 결혼 8년 차의 여성은 무자녀 계획을 밝힌 순간 반드시 그 이유를 대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행복을 증명해야 한다. 불시에 아래와 같은 질문의 굴레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언제쯤 아기를 낳을 생각이냐-없다/ 왜 여자로서의 행복을 포기하나-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네 아이가 있으면 더 좋다-지금 내 생활에 만족한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엄마가 되면 확실히 다른 차원의 행복을 알게 된다-굳이 알고 싶지 않다(반복).’ 양가 부모님과 친구, 편의점 아줌마는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되묻는 걸로 ‘언젠간 변할 것’이라는 심증을 드러낸다. 이들은 내가 엄마가 아니어서 포기하는 행복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사실 이 시대에는 어찌 보면 자녀 갖는 걸 망설이는 게 더 합리적이다. 엄마는 일과 육아를 동시에 수행하는 슈퍼우먼이 되거나 독박 육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이의 등장과 함께 내 집 마련의 꿈과 어릴 적부터 꿈꿔온 커리어와는 멀어지는 것도 물론이다. 일반적인 저출산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천지가 개벽하여 엄마의 책임과 일을 덜어준다고 해도 나는 과연 엄마라는 선택을 할까? 지금으로서는 아니다. 나는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역할을 맡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굳이 엄마가 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나를 걱정하는 이들의 말처럼 나는 아이와 주고받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평생 알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고된 일에도 피로를 싹 풀어주는 아이의 미소나 생애 각 단계마다 아이와 함께 스스로 성장하는 기쁨도. 하지만 또 다른 관계 속에서 다른 차원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을까? 일례로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소설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였다. 외로운 소년 제제와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어른 뽀르뚜까와의 우정을 다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뽀르뚜까는 가족에게 학대받던 제제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고 보듬었으며, 누구보다 깊은 친구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얼마 전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어바웃 어 보이> 속의 윌(휴 그랜트)과 마커스(니컬러스 홀트)의 우정을 롤모델 삼기로 했다. 앞으로 우리가 조카들 또는 주변 아이들과 서로 친구처럼, 때로는 조언을 해줄 수도 있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다. 말년에 외롭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듣는다. 하지만 나는 주변과 맺는 관계가 그렇게 무책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구가, 형제가, 나와 우정을 쌓은 그들의 아이들이 외면할까. 그건 결국 내 노력이고, 내 몫이다. 자식이라고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난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게 아니라 행복은 내가 찾기로 한 것이다.

에디터 김아름

글 이경은, 원영인

사진 CASS BIRD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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