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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르는 아이 VS. 치우는 엄마.. 승자는?

[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집 안 정리정돈을 멈춘 뒤 내가 얻게 된 것

결혼 1년 뒤 집을 넓혀 이사를 했다. 집이 좁아서 들이지 못했던 가전제품 몇 가지와 소파, 식탁 같은 덩치 큰 가구들을 새로 마련했다. 새 집에 맞는 블라인드와 커튼을 설치했고 침구를 비롯해 자잘한 소품도 장만했다. 집을 꾸밀 때 남편이 전적으로 내 의견을 따라줘서 나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고를 수 있었다. 온전히 내 취향대로 공들여 꾸민 우리 집이 나로서는 매우 특별했다.

많은 물건들을 구입했지만 첫 신혼집이 워낙 작았던 터라 원래 있던 살림을 더해도 단출한 모양새였다. 생활하면서 흐트러져도 금방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집 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깔끔하게 정리한 뒤의 편안함과 만족감을 그때 처음 느꼈다. 거의 항상 깔끔한 상태를 유지했기에 청소가 힘들지 않았던 덕도 컸다. 그로부터 2년 후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의 아늑한 공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갓난아기가 차지하는 물리적 공간은 사실상 넓지 않았다. 아기침대를 침실에 놓았고 서랍 두 칸을 비워 아기용품과 옷을 수납했다. 분유포트와 젖병 등 수유에 필요한 물건 일체는 주방 한쪽에 두었다. 아기를 씻길 때 쓸 비누, 대야도 욕실에 자리를 잡았다. 시작은 이만큼이었지만 우리의 보금자리는 빠르게 흐트러져갔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를 따라 아이 물건이 많아졌고 아이가 집에서 차지하는 공간도 넓어졌다. 물건도 많아졌지만 육아하며 전처럼 깔끔하게 집 안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뭐든지 수납장에 넣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그때 쓰려면 아기 물건은 눈에 보이는 곳에 내놓는 게 맞았다. 휑하다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하며 살았는데 치우고 돌아서면 너저분해졌다.

SNS를 보면 아이 키우는 집 같지 않게 깔끔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이들은 왜 그리 많은지…. 상대적 박탈감에 육아의 고단함까지 더해져 스트레스가 컸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된 지금이야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아이가 멋모르고 어지르기만 하던 서너 살 무렵에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집을 치웠다. 그래봐야 소음방지 매트가 깔리고 크고 작은 장난감이 버티고 있는 거실 풍경이 깔끔하게 보일 리는 없었다.

그림책 「깔끔쟁이 빅터 아저씨」의 한 장면 ⓒ책속물고기그림책 「깔끔쟁이 빅터 아저씨」의 한 장면 ⓒ책속물고기

◇ 까칠한 표정이 나와 닮은 '빅터 아저씨'

그림책 「깔끔쟁이 빅터 아저씨」(박민희, 책속물고기, 2015년)의 주인공 빅터 아저씨는 그때의 나와 닮은 구석이 있다. 빅터 아저씨는 앞치마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세제와 손걸레를 들고 청소를 한다. 벽을 닦겠다고 사다리에 오르는 걸 보면 아저씨가 얼마나 구석구석 깔끔하게 해놓고 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양말도 다려서 신고 옷이며 신발이며 수납장에 차곡차곡 줄 맞춰 정리하기도 잘한다. 더러운 게 싫다고 옷은 하얀색만 고집한다. 내가 이 정도로 깔끔쟁이인 건 아니었지만 인상 쓴 까칠한 표정만큼은 비슷할 때가 많았다.

"빅터 아저씨는 지저분한 걸 정말정말 싫어해서 뭐든지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화가 났지."

깨끗하고 깔끔한 게 나쁠 까닭은 없다. 하지만 이 때문에 빅터 아저씨처럼 화가 많아져서 문제였다. 아이가 논다고 장난감을 어지르면 쪼르르 가서 치웠다. 서로 다른 장난감을 늘어놓고 함께 놀이할 수 있는 건데 아이의 창의적 놀이를 차단해버린 것이다. 단지 깨끗한 거실 풍경을 얻기 위해서였다.

청소에 급급해 아이가 놀고 있는데도 빨리 치우라고 종용했고 아이가 치운 게 성에 안 차 다시 정리를 하기도 했다. 아이 앞에서 화를 삼키려고 했어도 짜증난 내 마음을 많이 들켰을 것이다.

아이가 놀이 후에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놀이가 끝난 뒤 지도하면 된다. 그리고 아이가 정리한 게 미숙하더라도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게 먼저다. 어른이 나서면 정리습관을 갖기 어렵고 자신이 정리를 못하며 실수했다고 여겨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육아 상식 같지만 나는 아이 키우며 하나씩 배워나갔다.

◇ 과감하게 벗어나 보니 길이 있었다

불똥이 남편에게 튈 때도 있었다. 둘이 살 때는 남편이 어지른 것도 치워줄 수 있는 넉넉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그때는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아이를 키우며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남편이 느긋하니 화가 났다. 내 눈에는 집 안 꼴이 어수선해서 치우자는 건데 남편은 뭐가 문제인지 모를 때가 많았다.

즉흥적으로 덩치 큰 아기 장난감을 사들고 와 내 속을 끓일 때도 있었다. 아기 푸쉬카, RC카를 차례로 사와서 현관을 발 디딜 틈도 없게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버리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해가 거듭될수록 남편의 짐은 차곡차곡 늘어났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돈된 상황이라 보는 남편과 나의 기준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니 예전보다 그런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훨씬 유해졌음을 느낀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가 버리기 싫어하는 아빠의 성향을 닮아간다는 사실이다. 여섯 살이 된 아이는 이제 제 몫의 물건이 꽤 많다. 장난감이 많으니 어떤 것은 자연스레 아이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그런 것들을 내 선에서 적절히 처분하는데 문제는 열에 한둘은 아이가 나중에 꼭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없어졌다며 찾아달라고 하니 난감하다. 네가 물건이 많아서 그러니 진짜 필요한 물건, 장난감만 사고 그걸 잘 정리해두자고 말하곤 한다.

그림책 「깔끔쟁이 빅터 아저씨」는 "언제나 시끌벅적한 도시에 빅터라는 아저씨가 있었어"라는 말로 시작한다. '언제나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혼자만 깔끔하게 지내려는 빅터 아저씨의 생각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아이를 키우는 집은 '언제나 시끌벅적한 도시'일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독박육아를 하는 엄마가 깔끔하고 완벽하게 정돈된 집을 꿈꾼 것도 무리수였다.

스스로를 옥죄던 문제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보니 길이 있었다. 두 번 청소할 걸 한 번으로 줄이니 아이와 놀이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마음을 고쳐먹으니 집 안이 덜 정돈되어 있어도 스트레스가 줄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은 내가 꿈꾸던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와는 날마다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아이가 집에서 마음껏 놀이하며 추억을 쌓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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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집 안 정리정돈을 멈춘 뒤 내가 얻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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