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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태어난 아이에게 할 말이 없다고요?

조리원에서 만난 엄마들은 함께 젖을 물리며 묘한 동질감 섞인 대화를 나눈다. ⓒ김경옥조리원에서 만난 엄마들은 함께 젖을 물리며 묘한 동질감 섞인 대화를 나눈다. ⓒ김경옥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두 엄마가 얘기한다.

"저기요… 가슴이 커졌어요. 아이를 낳으니까 가슴이 다 커지네요."

"저도 그래요. 신기해요. 이런 컵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거 나중에 다 빠지는 거 아니겠죠?"

"설마요~"

아이를 낳으니 또 이런 일도 생긴다는 듯 그녀들은 해맑았다. 우리는 이토록 앞날을 몰랐다. 그 가슴에서 모유가 다 빠져나가고 나면 그 전만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두 엄마의 대화를 듣고 있던 둘째 아이 엄마만이 씁쓸한 웃음을 흘릴 뿐. 조리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엄마'라는 지위를 새롭게 부여받은 우리는 '다들 가니까' 조리원엘 들어갔고, 모유 수유 때문에 두 시간마다 불려갔다. '이게 산후조리냐며, 당최 산후에 조리는 언제 하는 거냐'며 잠이라도 좀 실컷 잤으면 하는 허황된 희망을 품었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처음이었다. 잠들만 하면 불러대는 그 상황도, 낯선 사람 앞에서 가슴을 노출해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묘한 동지애를 느끼는 것도, 내 품에 안긴 아이도, 그 아이를 안고 있는 나의 모습도 모두 설레면서도 낯선 것이었다.

한 지인은 아이를 낳고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아이 낳으니까 어때, 좋아?"

"아니, 얘가 누군가 싶어. 그냥 일단 나왔으니까 젖은 물리고 있어."

그렇게 갑작스러운 일이기도 한 것이다. 엄마가 됐다는 것은.

어느 날이었다. 조리원에서 교육이 진행됐다. 굴지의 아동교육 자료를 만드는 한 출판사에서 교육을 나왔다. 물론 홍보를 하기 위함이었겠지만 그걸 알면서도 뭐라도 하나 더 배우고 싶었던 우리는 꾸역꾸역 시간을 내어 참석했다. 조리원 출신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을 법한―허접하지만, 오랫동안 상당히 쓸모있는―컬러 모빌을 만들고, 노래 하나를 배웠다. 아이에게 불러주면 좋을 노래라고 하기에 나 역시도 가사를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한참을 따라 불렀다. 무익과 유익의 중간쯤에서 교육은 끝이 났고 우리는 다시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본업에 투입됐다. 엄마들끼리 수다를 떨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데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조금 전 배웠던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누군가가 흥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지?' 저기 맨 끝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한 엄마가 참 모범적이게도 아이를 보면서 계속 그 노래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던 것. 나는 그녀의 열성적인 모습에 감탄했다.

그런데 그 엄마가 하는 말은 이랬다.

"나, 이 노래 아니면 아이에게 할 말이 없어요."

"응? 왜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신입 엄마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부터 배워야 하는 걸까? 다른 엄마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았다.

"쉬했구나!"

"배고파? 맘마 줄까?"

"응아했어?"

"자꾸 왜 울어. 뭐가 불편해?"

그 이외에 이렇다 할 말은 더 없었다. 그때 알았다. 서툰 첫째 아이 엄마들은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부터 익숙해져야 함을. 그러면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면 될까.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아이와 단 둘이 된 나는 열심히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김경옥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아이와 단 둘이 된 나는 열심히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김경옥

두 주 간의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아이를 향한 나의 수다는 시작됐다. 나는 그냥 아이를 눕혀 놓고,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배고프구나. 응아했어?"라는 말뿐만 아니라 아이를 우리 집 가족의 일원으로 보고 대화를 시도했다. 가끔 곤란한 일이 생기면 의견을 묻기도 했다.

"엄마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대답은커녕 아이는 그냥 모빌에 시선을 두고 파닥파닥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음, 좋은 조언 고마워. 직접 부딪치라는 뜻이구나" 말했다.

"파닥파닥!"

"오늘은 밥이 너무 질게 됐어. 너는 나중에 진밥을 좋아할까, 된밥을 좋아할까? 엄마는 말이지~"

이런 대화의 시도는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24시간 육아생활에 대화할 곳 없는 무언가 고립돼가고 있다고 느끼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이가 알아듣기나 하겠냐고? 무의미해 보이는 이런 대화들이 절대 그렇지 않았음을 나는 이제야 실감한다.

동요를 틀어놓고 숨이 헐떡거릴 때까지 아이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아이는 누워있었고 아주 간간히 엄마에게 눈길을 주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율동을 했다. 이쯤 되면 이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닌 엄마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발악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상관없다. 아이는 엄마가 참 흥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 에너지를 흡수했을 테니까. 아이에게 무슨 말을 걸어야 할까 막막하다면 아이를 친구라고 생각하자. 우리 지금, 친구를 앞에 앉혀놓고 얼마나 많은 말을 쏟아내고 싶은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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