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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은 어디에

‘남자 가뭄’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도대체 그 많던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남자를 찾으려면 정말 남자가 많은 곳으로 가야 하는 걸까. 에디터 C의 ‘팩트 체크’.



2015년이 되자, 어느덧 서른여덟. “선배, ‘38 광땡’이니 올해 남자 복 터지는 거 아니에요!”라는 후배의 새해 인사를 마주하면서 솔직히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하느니 고양이를 키우는 전형적인(!) 노처녀로 늙는 쪽을 택하겠다는 쓸데없는 다짐으로 한 해의 문을 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히스테릭한 미혼 여성(기준이 뭐길래)들을 치유하기 위해 결혼을 권장했다는데, 당시의 내 또래들이 얼마나 많은 권장 아닌 회유와 질책을 받았을지 생각하니 21세기에, 그것도 담담한(척 하시는) 부모 아래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물론 ‘적어도 난 히스테릭한 여자는 아니니까’라는 자만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엄마, 진짜 없어. 주위에 남자가 없다니까.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야. 포기합시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의 새해 덕담을 받아치는 용도로 사용해 온 이 어줍잖은 핑계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다는 걸 안 건 불과 얼마 전, 통계청 자료를 마주하면서다. 2013년 말에 조사된 자료를 보니 ‘여초’ 현상이 가장 심화된 지역이 바로 서울, 자치구별로 보면 내가 사는 강남구를 비롯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 3구와 마포구, 서대문구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여성 비율이 가장 높다는 서대문구 신촌동(이화여대, 연세대, 서강대 재학생이 거주하는)에서 대학을 졸업한 거의 모든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는 나의 삶은 ‘여자가 많은 곳은 별로여서’라는 꽤 의미심장한 이유로 대학을 자연계로 교차 지원한 보람도 없이 여초 일색으로 물들어버렸다 (미안, 거의 모든 여자 동료들이여!).

 

“일자리를 찾을 때 회사가 많은 곳으로 향하는 것처럼 남자를 찾으려면 남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야 해요. 미국엔 농담 삼아 이런 말도 있어요. ‘더 나이 들기 전에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면 군사기지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라. 그리고 그곳 교회의 맨 뒷좌석에 앉아라!” 를 쓴 임상심리학 박사 웬디 월시(Wendy Walsh)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여초 집단인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를 직업으로 삼은 것이 싱글로 남은 하나의 요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과연 사실일까. 그렇다면 성비(여자 100명당 남자 수)가 높다는 서울 관악구의 고시촌이나 중구 을지로동, 용산구 남영동, 종로구 1, 2, 3, 4가, 영등포구 영등포동 중 한 곳에 거주하면서 ‘공돌이’ 일색인 IT 계열이나 상사맨이 된 이 땅의 장그래들과 어울렸다면 사정은 달라졌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성비가가장 높다는 울산으로 향했어야 부모님의 바람을 충족시킬 수 있었을까.

 

이런 나의 의문을 해소시켜 준 건 <엘르> 미국의 칼럼니스트 트레이시 클락-플로리(Tracey Clark-Flory)였다. 그녀가 전해온 ‘남자를 발견하지 못한 여자들로 넘쳐나는 도시, 뉴욕’의 이야기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뉴욕 여자들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시도한 스페셜한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말이다.

 

커플 매칭 회사인 ‘데이팅 링(Dating Ring)’에서 주선하고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에어리어는 외로운 공대생들이 넘쳐나는 반면, 북동부의 사무실 복도에는 데이트를 즐기지 못하는 여성들이 넘쳐난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획됐고, 이스트 코스트에 사는 여성들은 샌프란시스코 남자들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펀딩에 참여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가 오버랩되는 짠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이앤에게 베이 에어리어는 결코 ‘괜찮은 독신남들의 메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나같이 폴로 셔츠를 풀어헤친 남자들의 옷차림은 패셔너블한 뉴요커인 그녀의 눈에 거슬릴 뿐이고 랩톱이 든 백팩을 둘러맨 미래의 마크 주커버그들과는 대화조차 통하지 않았다니 말이다. “정말 최악이에요. 남자들은 많지만, 어느 누구랑도 데이트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요. 샌프란시스코는 남자친구나 남편감을 찾길 원하는 친구들에겐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은 곳이에요.” 어쩌면 다이앤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매칭의 조건은 ‘멀쩡한 이성’이 많은 것과 관계없이 ‘흥분이 되는 이성’이 있느냐에 관한 문제여서 성비나 개체 수는 사실상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물며 섹시한 남성에게 끌리는 뉴요커에게 단지 스마트한 너드들이 성에 찰 리 없으니 ‘실리콘 밸리에선 데이트 확률은 높지만 상품이 이상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물론 유명 IT 기업에 다니는 실리콘 밸리의 스테레오타입은 적당한 사교성을 갖춘 스마트한 인재지만 적어도 뉴요커의 눈엔 매력적으로 비치지 않는다는 게 보다 현실적인 문제일 수도).

 

따라서 성비가 높은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덴버, 댈러스로 향한 여자나 성비가 낮은 뉴욕, 시카고, 마이애미, 필라델피아, 보스턴으로 날아간 남자가 짝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그 도시 사람들과의 연계성 내지는 이성과의 공감 부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남편감을 찾기 위해 미혼 여성들을 집단적으로 먼 곳까지 이동한다는 아이디어가 최근에 일어난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1850년엔 이런 일도 있었어요. 매사추세츠 주정부가 30,000여 명의 여성들을 여성 인구가 부족한 오리건 주와 캘리포니아 주로 이동시킬 것을 제안했었죠.” 의 저자이자 여성 전문가인 레베카 트라이스터(Rebecca Traister)가 리서치 자료 중 일부를 언급했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1862년에는 한 보수적인 영국의 정치가가 남아도는 자국의 싱글 여성을 미국이나 호주로 이주시키자고 주장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이런 계획들은 실패로 돌아갔는데 그 이유는 굉장히 기계적이고 막연한 데이터에 입각한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사실 ‘불필요한’ 혹은 ‘남아도는’ 여성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도 막연한 데다, 여성들을 실어나를 10,000여 척의 배들을 조달할 수도 없었던 탓이기도 했을 테고. 대한민국의 지역별 성비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15~34세 인구 중 여자가 남자보다 많은 국가’에 대한 미국 통계청 자료를 보게 됐다. 1위가 미국령인 버진 아일랜드(사람도, 지역의 운명도 이름에 의해 좌우되는가!)로 여자가 남자보다 23% 많고 지부티공화국, 북마리아나제도가 2, 3위를 다퉜다. 우리나라는 세계 217위로 남자가 여자보다 약 12%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니 15~34세 연령대로만 따진다면 남초가 강했다.

 

한편 컬럼비아 대학의 데이터 과학자 조너선 소마(Jonathan Soma)가 조사한 뉴욕 시의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18~64세의 자료에선 미혼 여성이 미혼 남성보다 많지만, 20~34세로 제한할 경우엔 오히려 미혼 남성이 미혼 여성보다 더 많다는 통계가 나왔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연고지에서 자유로운 습성을 가졌다는 건 알고 있지만 굳이 샌프란시스코까지 짝을 찾아 떠날 필요가 있을까요. 이 데이터를 보면 뉴욕은 오히려 데이트할 만한 젊은 남자가 많은 곳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찾는 것과 사랑을 찾는 것은 확실히 거리가 있을뿐더러 자신이 사는 곳과도 충분히 연관돼 있으니까요.”

 

사실, 결혼율이 높은 아이다호와 이혼율이 높은 플로리다의 파나마 시티 거주자 중 실제로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미혼 남녀에 대한 일부 통계학적 수치만으로 철새를 방불케 하는 데이트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 역시 이혼율이 높은 파나마에서 결혼율이 높은 아이다호로 이주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계획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싱글 여성들은 이 모순적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또 나는? <진화하는 결혼>을 쓴 스테파니 쿤츠(Stephanie Coontz)는 결혼의 역사와 결혼이 지니는 수많은 의미를 짚어보게 만든다. “지난 50년 동안 결혼 제도의 붕괴나 위기의식에 대한 생각들은 역사적으로 늘 있어 왔어요. 그렇게 축적된 결과가 최근 들어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뿐이에요. 게다가 교육을 잘 받은 독립적인 여성들은 질 높은 관계를 원하기 때문에 남자들에겐 더욱 위협적이죠. 언제나 그렇듯 남녀의 기대치가 서로 어긋나는 건 당연한 것이고요.”

 

점점 더 남자를 만나기 어려워지는 건 생각이나 취향이 디테일해지는 데 비해 남녀간의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언젠가 S전자에 다니던 ‘매너꽝’ 너드가 내 인생 최악의 소개팅이었던 걸 떠올려보면 애초에 건넨 이 화두는 거둬들이는 것이 맞겠다. ‘여초가 극심한 강남에 살면서 여자 일색인 동료들과 일하기 때문에, 결국 주위에 남자 비율이 높지 않으니 결혼을 못하는 것’이라는 핑계는(예상한 것처럼) 이로써 속내가 들켰다.

 

또 짝을 만나기 위해 꼭 남초가 여실한 동네로 이동해야 한다는 설 역시 부인할 여지가 충분하다. 남녀의 만남은 결국 감정과 기대치의 문제이므로. 사실 내 또래(±3세)의 싱글 여성이라면 종종 ‘(남아 있는) 좋은 남자의 수가 현저히 부족할뿐더러 데이트할 시간까지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불안감이나 생물학적인 경고등이 깜박이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처절하게 매달리거나 여전히 싱글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삶이 절망적이라 여기는 여성들은 실제론 얼마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녀들도 나처럼 의외로 그렇게 히스테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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