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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정직하다

몸은 정직하다

몸을 보면 단박에 안다. 무조건 날씬하고 매끈하게 가꾼 몸이 아니라, 삶이 새겨져 있는 몸. 여자 스포츠 선수들의 몸이 궁금했던 이유다. 그들의 몸에는 각자의 근육이 자리하고 있었다. 근육의 생김과 힘줄의 형태 하나하나에서 그들의 생활이 읽혔다. 그건 그들의 몸이 정신과 연결돼 있다는 증거이고, 그 정신력이 다시 몸을 만든다는 의미다. 몸은 이토록 정직하다.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김지연 선수
새카맣게 그을린 다부진 몸. 그녀가 헐렁한 티셔츠 대신 몸이 다 드러나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나왔을 때,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160cm가 채 안 되는 작고 마른 몸에 잘게 쪼개진 근육들이 꽉 들어찬 모습. 8세 때부터 지금까지, 트라이애슬론 20년 차 김지연 선수다.
트라이애슬론은 ‘철인 3종 경기’를 말한다. 수영 1500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연달아 뛰는, 엄청난 체력을 요하는 종목이다. 이걸 20년 동안 해온 선수에게 슬럼프라는 게 없을 리 없다. 그녀도 무릎 부상으로 2년을 쉬었던 적이 있다. 그 후 다시 몸을 끌어올리는 데 3년, 총 5년의 공백기를 보내야 했다.
김지연은 그러나 슬럼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훈련하다가 부상이 온 건데, 운동 다시 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어요. 그러면서 든 생각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를 흔히 슬럼프라고 하잖아요. 꼭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데 어쩌면 자기가 슬럼프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니 극복하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린 거죠.”

운동선수의 정신력을 따라올 사람은 드물다. 매일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고, 그것을 뛰어넘는다. 철인 3종을 하면서 숨 하나 안 차고 가뿐하게 해내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20년 동안 해온 그녀의 ‘멘탈’은 20년을 매일같이 스스로를 넘어선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력이다.
그녀의 식단도 좀 특별하다. 시합 직전에는 고기 같은 단백질은 전혀 먹지 않고, 고탄수화물 식사를 한다. 단백질은 근육을 굳고 커지게 하기 때문에 잘게 쪼개진 근육을 사용하는 트라이애슬론 선수에게는 불리하다. 대신 고열량의 고탄수화물 식사를 통해 장시간 쓸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트라이애슬론 선수들의 연령대는 30대 중반이 많다. 체력이 뛰어난 20대라고 딱히 유리한 종목이 아니라는 것. 곧 30대를 바라보고 있는 김지연 선수는 그래서 앞으로 더 향상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트라이애슬론은 굉장히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 훈련량이 부족하거나 쉬면 단박에 티가 나죠. 전 매일매일 훈련하면서 성장해가는 걸 느껴요. 전 운동하면서 제 몸을 얻었어요.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이게 내 삶이니까요.”

수영 최초의 선수 겸 코치 임다연 선수
앳된 외모와 왠지 상반되는 구릿빛 피부. 꿈나무 선수들의 6년 차 코치이자 20년 차 수영 선수 임다연이다. 그녀는 스스로 “떡대(?)가 크다”며 자조했지만, 수영복을 입은 그녀의 몸은 매끈하게 잘 빠진 무용수의 것보다 훨씬 더 감탄스러웠다. 딱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팔뚝, 곧게 뻗은 종아리와 단단한 허벅지까지. 물속에서 보낸 숱한 날들이 고스란히 보였다.
“제가 단거리 자유형이 주종목인데, 선수 중에서도 키가 작은 편(163cm)이에요. 단거리 선수들이 유독 커서 저랑 10cm 이상 차이가 나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팔이 긴 것도 아니고 좋은 신체 조건이 아니다 보니, 남들보다 더 빠르게, 물을 잡을 때도 더 힘 있게 많이 잡는 것에 신경을 써요.”
임다연은 학창 시절 ‘연습용 선수’로 불렸다. 연습 때는 선배들을 다 이기고 남자 선수와 겨룰 만큼 기록이 좋다가도, 시합에만 나가면 졌다. 고교 졸업 후 실업팀과의 계약이 잘못되면서 위기도 닥쳤다. 그녀는 소속팀이 없는 시간 동안 좌절하기보다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멘탈 코치 자격증을 비롯해 자격증만 10개를 땄고, 수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연습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임다연의 하루는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을 만큼 빡빡하다. 매일 아침 7시 30분~9시 30분 두 시간 수영, 이후 지상 운동을 하고, 짬을 내 대학원 논문을 쓴다. 오후에는 코치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끝나면 저녁 7시 30분, 그때부터 밤 10시까지 혼자 야간 훈련을 한다. 집은 잠만 자는 곳이 된 지 오래고, 남들은 쉬는 일요일에도 훈련을 한다.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야간에 수영을 가면 몸이 진짜 너무 힘들거든요. 그럴 때 오히려 강도를 높여서 운동해요. 남아 있는 힘을 완전히 다 쓰는 거죠. 그렇게 해서 목표했던 기록으로 딱 훈련을 끝냈을 때 ‘아, 내가 오늘도 한 건 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밀려와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아이들 지도하면서 어느 순간 수영이 너무 재미있어졌어요. 이제는 수영으로 스트레스를 풀죠. 제자들은 일찍부터 좀 즐기면서 운동하면 좋겠어요. 전 뒤늦게 깨달았지만, 제자들이 그걸 빨리 깨닫는다면 저보다 훨씬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여자 배구 국가대표 양효진 선수
이렇게나 거구(190cm)로 가볍게 날아오르는 양효진을 보고 있자니, 인간의 몸이 정말 신비하다는 걸 실감한다. 한 영화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배구 센터는 키만 크면 단가? 양효진에게 이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녀는 빠르고 창의적이다.
그녀의 등장으로 소속팀은 달라졌고, 한국 여자 배구가 달라졌다. 게다가 시시각각 변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진심으로 배구를 즐기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선수가 재미있으면 관객도 재미있다. 양효진 덕에 여자 배구를 보고 또 본다.”
초등학교 3학년 운동회 때 양효진이 줄넘기하는 걸 본 선생님이 배구를 권했다. 그녀는 처음 쥐어본 배구공을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고, 지금 최고의 배구 선수로 자랐다. 배구 선수에게는 딜레마가 있다. 점프할 땐 가벼워야 하지만, 공격할 때는 폭발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것.
“프로에 입단했을 때 몸무게가 64kg이었어요. 너무 말라서 힘이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죠. 코치님이 계속 야식 먹이고 해서 8kg 정도를 찌웠는데. 체질상 잘 찌는 체질도 아니고, 더 찌운다고 파워가 나오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웨이트로 근력을 열심히 키우고 있어요. 몸을 만들기 위한게 아니라, 저희한텐 생명이죠. 안 하면 아프고 버텨내기가 힘드니까.”

배구 시즌은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이어진다. 한 시즌에 30경기를 치른다. 365일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훈련,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경기 결과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강한 ‘멘탈’이다. “매 경기 다 마음에 들 순 없잖아요. 근데 또 다 잘하고 싶은 게 선수 마음이죠. 게임 하나하나에 업, 다운이 너무 심해요.”
선수도 사람인지라 술로도 노는 걸로도 스트레스를 푼다. 양효진은 그보다는 책을 읽는 게 좋다. “책이 나의 동아줄이었다”고 말한다. “제가 운동선수로서 향상하기까지 책이 8할을 차지해요. 힘들어도 책을 보면 안정이 됐어요. 타고난 신체 조건만으로는 1~2년 정도 잘할 수 있겠죠. 그러나 멘탈이 받쳐주지 않으면 절대 오래 할 수 없는 게 배구예요.”
거의 모든 게 ‘절제’인 삶이다. 배구를 진짜 좋아하지 않는다면 견디기 힘든 삶. 양효진이 이렇게 말할 때 가장 빛난 이유다. “그래도 배구가 주는 희열이 제일 커요.”

여자 축구 국가대표 주장 조소현 선수
양말을 무릎 위로 단단히 올려 신고, 축구화 끈을 신중히 동여맨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를 눈꼬리가 치켜 올라갈 만큼 꽁꽁 묶는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팀의 주장, 조소현 선수다. 그녀는 신기한 몸을 가졌다. 발목부터 종아리로 이어지는 라인은 달리기에 특화된 흑인의 종아리처럼 매끈했고, 허벅지는 예상보다도 더 탄탄했다.
바짝 올려 붙은 엉덩이에 군살 하나 없이 단단하게 흘러가는 허리선 하며, 넓은등근부터 팔뚝의 이두근으로 꽉 차게 이어지는 근육까지, 놀라웠다. 조소현이 특별히 단련하는 신체 부위는 예상외로 상체와 코어 위주이고, 하체는 오히려 가볍게 만드는 편이다.
여자 축구도 생각보다 몸싸움이 격렬해 상체 단련이 필수다. 우리나라 여자 축구는 꽤 강하다. 남자 축구보다 세계 랭킹이 높다. 여자 선수 중 가장 많은 A매치 기록을 가진 이가 바로 조소현이다. 그녀는 의외로 ‘축구는 나의 전부’ 같은 유형이 아니다. 여가 시간을 최대한 만들고, 일어, 영어, 프랑스어까지 공부하는 학구파다.

“해외 리그 진출을 대비하는 것도 있지만, 영어 같은 경우 기본적으로 해야 해요. 경기 때 주장으로서 어필할 경우가 생긴다든가, 매니저가 없을 때는 제가 직접 대화하는 게 좋고요.”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조소현 선수는 오히려 축구 외의 것을 활발하게 함으로써 축구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은행원 남자 친구도 있다. 조소현의 최종 목표는 그래서 ‘세계 랭킹 몇 위’나 ‘월드컵 우승’ 같은 것이 아니라, ‘아이 안고 축구 하는 엄마’가 되는 것이다. “미국 훈련을 갔을 때 놀란 게, 한 여자 선수가 시합이 끝나고 아이에게 자기 유니폼을 똑같이 입혀서 운동장에 데리고 와 같이 노는 거예요. 충격적이었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애를 낳았는데 몸이 되나?’ ‘선수 활동을 할 수가 있나?’ 싶더라고요. 근데 후배들이 저보고 언니는 저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대요(웃음). 전 여자 스포츠의 방향이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리부터 ‘애를 낳았으니까 몸이 안 될 거야’라고 포기하거나 주변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고, 애 낳고도 운동할 수 있는 문화가 생겼으면 해요. 제가 그거 한번 해볼게요.”

전 우슈 국가대표, 현 로드FC 임소희 선수
대부분의 스포츠가 기록이나 점수를 통해 승부를 가르는 것이라면, 격투기는 다르다. 상대방을 쓰러뜨려야 내가 산다. 쓰러뜨리느냐 쓰러지느냐, 절체절명의 외로운 싸움.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순식간에 기술을 걸고 다시 방어하고.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격투기 선수의 몸은 그래서 단단하면서 유연하고, 날래면서 또 무게감이 있다. 카메라 앞에서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던 그녀가 몸 풀 듯 가볍게 잽을 날리거나 킥을 자유자재로 날릴 때, 흠칫 깨달았다. 그래, 이게 격투기 선수의 몸놀림이구나.
스무 살의 이 앳된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우슈 선수 출신의 아빠가 운영하는 체육관에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우슈를 배웠다. 우슈 청소년 국가대표를 지내며, 우슈와 킥복싱 등 입식 경기를 뛰다가 작년 4월에 ‘로드FC’ 데뷔전을 치렀다.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왔어요. 한창 TV로 UFC 경기를 보면서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같은 격투 종목이지만 그라운드 기술도 있고, 룰도 다르고,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아빠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며 한번 해보라고 하셨고. 사실 아빠 빼고 엄마랑 동생은 다 반대했어요. 너무 위험해 보이니까.”

격투기는 거칠다. 데뷔전에서 그녀는 중국의 얜 시아오난 선수에게 패했지만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준비 기간이 고작 한 달 남짓, 부족한 점이 많았다. “데뷔전 치르고 나서 너무 아쉽고 속상했지만, 그러면서도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말로 설명은 잘 안 되는데. 로드FC 경기 자체가 크고, 관객도 많고, 링이 아닌 케이지 안에 들어가는 것도 새로웠고. 모든 게 재미있었어요.”
강원 원주의 ‘팀포스’에서 훈련 중인 임소희의 일상은 배우고, 혼나고, 또 혼나고 배우고의 반복이다. 시합 때와는 달리 내내 조곤조곤 차분하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며 겸손하던 임소희가 갑자기 큰 목소리를 냈다. “전 앞날이 아직 창창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할 때.
“로드FC 여자 경기가 재미없다고 하는 분이 많아요. 물론 실력이 부족한 건 저희 탓이지만, 선수들 모두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수준 떨어진다는 말보다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세요. 앞으로 훨씬 더 잘할 거니까요.”
에디터_성영주 | 사진_YOON SANG MYUNG, PARK SEONG JAE
여성중앙 2017.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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